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신에이 동화 (문단 편집) === A 프로덕션 시대 (1965~1975) === 1965년 A프로덕션(Aプロダクション)이란 이름으로 창립했다. 창립자는 [[토에이 애니메이션]] 출신 애니메이터로 [[후지코 F. 후지오]] 작품에 자주 참여했던 애니메이터 쿠스베 다이키치로(楠部大吉郎,1934년 12월 10일~2005년 8월 27일). 그가 토에이 동화의 후배 [[시바야마 츠토무]] 등을 불러 모았다. 이는 당시 [[도쿄 무비]]의 사장이었던 후지오카 유타카가 애니메이션 실제작할 회사를 찾고 있다가 쿠스베 다이키치로와 의기투합한 것이다. 이후 주로 도쿄 무비가 기획한 작품의 애니메이션 제작을 맡았다. 그러나 두 회사 사이에는 자본 관계는 없다. A 프로덕션은 주로 도쿄 무비가 기획하고 제작한 작품의 실제작을 당당했다. 1968년에는 [[루팡 3세]]를 만들기 위해 후지오카 유타카가 직접 찾아가서 스카웃해 온 [[오오츠카 야스오]]를 영입했다. 1971년 6월에는 토에이 노동조합 노사분쟁으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[[타카하타 이사오]], [[미야자키 하야오]], [[코타베 요이치]] 팀이 스카웃 제의를 받고 이적해 왔다. 뒤따르듯이 이윽고 노사 분규의 진통 끝에 쫓겨나다시피 많은 토에이 동화 출신의 우수한 작화 인력이 A 프로덕션으로 이적해 왔다. 1973년에는 [[무시 프로덕션]]이 망해서 해체하면서, 1972년 10월에 무시 프로 출신이 설립한 [[매드 하우스]] 소속의 [[데자키 오사무]], [[카와지리 요시아키]] 같은 인력이 A 프로덕션 인력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. 그 대표적인 작품이 1975년작 [[감바의 모험]]이다. 정확히는 무시 프로 출신은 A 프로덕션 소속이 아니라 [[매드 하우스]] 소속도 있고 프리랜서도 있었다. 무시 프로 출신은 주로 매드 하우스나 훗날 [[선라이즈(브랜드)|SUNRISE]]가 되는 '닛뽄 선라이즈' 회사로 갔다. [[매드 하우스]]는 도쿄 무비가 설립 자금을 원조해서 창립한 회사였기 때문에, 이들은 A 프로덕션과 더불어 도쿄 무비의 실제작을 담당했다. 이 즈음 도쿄 무비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은 명작이 많다. 토에이의 뛰어난 인재와 무시 프로의 우수한 인재가 도쿄 무비에서 함께 일을 했기 때문이었다. A 프로덕션은 엄청나게 다작을 돌렸는데 워낙에 베테랑에 천재 스태프가 많다보니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. 이들은 [[루팡 3세]], [[감바의 모험]], [[명랑 개구리 뽕키치]], [[사무라이 자이언츠]], [[천재 바카본|원조 천재 바카본]] 등의 명작을 남겼으나, 라이벌 관계였던 무시 프로덕션 파벌과 토에이 파벌 간의 불화가 끊이지를 않았다고 한다.[* [[오오하시 마나부]]의 [[http://www.style.fm/as/01_talk/ohashi02.shtml|애니메이터 인터뷰]] 참조. 서로가 서로의 회사를 망하게 하는데 원인을 제공했다보니 서로 원망하고 있었고 연출과 작화 성향도 달랐다.] 결국 A 프로덕션은 얼마 안 가 해체되었다. 도쿄 무비는 산하에 1975년에 [[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]]이라는 애니메이션 실제작 자회사를 설립했고, 토에이 동화 출신이 많았던 A 프로덕션은 1976년에 '신에이 동화'(새로운 A라는 뜻이다)로 독립했다. 독립하면서 무시 프로덕션 일파는 [[매드하우스]], [[선라이즈(브랜드)|선라이즈]]로, [[미야자키 하야오]] 일파는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으로 갔으며 토에이 측 인력 일부가 남아 신에이 동화가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